나는 찻잎입니다.

위더스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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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하게 궁굴려진 작은 알갱이 몇 알을 잔에 넣고 팔팔 끓다가 잠시 숨죽인 물을 부어줍니다. 찰나의 순간이 중첩되기를 인내하며 기다리다보면 기지개켜듯 몸을 뒤틀며 카키색 이파리 몇 잎이 피어납니다.
우려낸 뜨거운 차를 훌훌 불어가며 마시는 게 아닙니다. 코끝을 스치는 정도의 작은 숨결로 달래듯 불며 음미해야 합니다. 마음을 모아 맛보아야 하는 태고의 물맛입니다. 작고 미세한 떨림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혀끝으로부터 서서히 밀어내는 기다란 여운이 자칫 놓칠 수 있는 향기를 머리끝으로 발끝으로 밀어내는 느낌으로 음미합니다.


나는 찻잎입니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나날의 흙내를 머금었습니다. 우수 경칩에 대지의 기운을 빨아올리며 피어났던 새 잎이었어요. 한 장인의 손가락이 다가오면서 땅과 작별했지요. 적당히 달아올랐던 무쇠 철판위에서 타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고문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 손바닥이 짓누르며 휘젓는 동안에 이리저리 궁굴려졌지요. 커다란 채반에 담겨 미라처럼 메마르자 어두운 통에 담겨 영원히 잠드는 듯했어요. 그렇게 오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출근길에 본 하현달

습관처럼 동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동트는 하늘에 실눈썹처럼 창백한 하현달이 잠시 걸렸다가 빛을 잃고 사그라졌어요. 가녀린 달빛이 떠오르는 햇빛에 녹아드는 광경을 한참이나 지켜봤답니다. 그리고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출근하는 길입니다. 자동차가 걷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가다서다 굴러가는지, 걷고 있는지 모호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연무에 잠긴 도심을 향해 떠밀려왔습니다.

전기포트에 물을 담아 끓였습니다. 잔에 녹차 알갱이 몇 개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습니다. 찻잎이 피어나고 있습니다. 연한 갈색의 차가 우러나왔습니다. 한 모금 머금자 입안이 개운해집니다. 씁쓸하기도 하고 떨떠름하기도 한 맛도 있어요.
차 한 모금 입안에 물고서 오늘 무엇이 나를 궁굴려댈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봅니다. 혹시 짓누르듯 다가오는 순간을 꾹 참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찻잔에 담긴 찻잎처럼, 우리 인생도 서로 부대끼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고의 세월이 흐르다보면 상큼한 인생의 향기와 함께 때로는 쓰고, 때로는 떫은 인간사를 완성하는 것 아닐까요?

이 블로그에서 제 글을 세상에 선보이는 첫 글입니다. 차 한 잔을 통해 작은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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